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굴레

돼지의 사랑

by 꼼배아재 2023. 7. 20.

아주 오래된 이야기이며 실화이다.

 

내가 군 생활 하던 시절, 아마도 상병 때쯤으로 기억한다.

부대에서 체육대회를 끝내고 전체회식 때문에 취사지원을(취사병이 아닌 일반사병이 군부대 내 식당으로 지원 나가는 일) 나갔었다.

 

취사지원을 자청한 이유는 회식 때 먹을 돼지를 잡아야하는데,(어느부대나 마찬가지겠지만 군에서 돼지를 잡는 방법은 여느 도살장에서 하는 그 것보다 훨씬 무식하고 잔인하다) 각 소대에서 무식하고 잔인한 병사 두 명씩 각출하라는 명령이 내려왔다.

 

그 당시 일명 “작업병”이라고 소대 내에서 짭밥 좀 찾다 싶고 일 잘하는 사병 몇 명을 칭하는 말이었고, 운 나쁘게도 내가 거기 포함 돼 있었다.

돌아가는 상황으로 보아 그 짓을(도살) 하러 가야할 판이었다.

비위 약하고 소심한 내가 하기엔 너무 버거운 일이었고, 다행히 취사 지원병도 있어야 한다기에 자진해서 식당으로 달려갔다.

거기까진 좋았는데 대대원 몇백 명의 회식 준비라는 게 장난이 아니더라, 차라리 무식하고 잔인한 그 짓을 하러 갈 껄 후회했다.

 

암튼 열심히 요리준비를 돕고 있는데 순대를 만들라고 돼지 한 쌍의 창자가 큰 대야에 한가득 담겨 식당으로 들어왔다.

창자 특유의 냄새 제거와 세척을 하기 위해서는 소금물에 담궈 두었다가 빨래 빨듯 문질러야 없어진다고 한 취사병이 일러주었고 아무래도 그 일은 내 몫이었다.

 

헌데 특이하게도 암놈의 창자색(보통 맑은 아이보리색)과는 다르게 수놈의 것은 온통 시뻘건 적색으로 피범벅이었다.

 

한 참을 문질렀는데도 색이 빠지지 않아 짜증이 날대로 난 나는, 창자색이 시뻘건 이유를 듣고 선 황당하기도 하고 믿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어이가 없었다.

 

암놈을 먼저 잡는 과정에서 반대편에 묶어 놓은 수놈이 괴성을 지르고 머리를 들이받고 발악을 하더란다.

 

암컷이 원래 지 짝이였는지는 몰라도 중함마로(대망치) 머리를 수차례 내리치고 칼로 목을 찔러대는 동안 옆에서 지켜보던 수놈은 암놈이 채 숨이 끊어지기도 전에 조용해지더니 입안에 흥건히 피를 흘리며 죽어 있었다고 했다.

 

같은 처지의 죽음에 대한 공포였는지, 아니면 정말 자기 짝을 도살하는 광경에 내장이 뒤틀리고 울화통이 터져서 창자가 피범벅이 되도록 발버둥 치다 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짐승의 마음이라고 무시하기엔 쫌 슬픈 이야기가 아닌가 싶다.

 

하물며 짐승도 이런 사랑을 하는데....

세상살이 별거 있습니까...그냥 쫌 더 사랑하며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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